이야기...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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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골드 차 만들기이야기...멍주 2021. 10. 16. 22:22
가끔은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는 날이 있다 딱히 그럴만한 이유를 찾자면 바람이 서늘해져서~ 하늘이 너무 맑아서~ 가을비가 내려서~ 달이 너무 밝아서~ 그도 아니면 그냥.... 마늘 심던 자리를 홀연히 벗어났다가 마당가에 화사하게 피어있는 메리골드 꽃송이에 눈길이 머문다 싱그러운 꽃이 예. 쁘. 다. 꽃차를 만들기 위해 과감히 꽃송이를 자른다 흐르는 물에 씻은 뒤 채반에서 살짝 쪄낸다 흐트러진 모양을 다듬어 서늘한 바람에 말려~ 마른 팬에 덖음과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메리골드 특유의 향은 점점 옅어지고 구수하고 은은한 향으로 거듭난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그런 마음을 탓하기보다 뭔가 의미있는 일을 찾는 것이 나를 위해 더 나은 일이란 걸 깨닫는다 그게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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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방앗간이야기...멍주 2020. 10. 16. 03:13
올해는 유달리 잦았던 비에 고춧가루 가격이 껑충 뛰었다고 하네요 친정에도 1,000주나 심었다던 고추 모종이 탄저병으로 몽땅 고사해버린 탓에 해마다 가져다 먹었던 고춧가루를 다른 곳에서 구입할 수밖에 없었어요. 마침 이웃에서 태양초 말린 게 여유가 있다고 하셔서 냉큼 사 들고 왔으니 다행이었죠 말린 고추를 들고 집 근처 새로 생긴 방앗간으로 갔습니다 시골 방앗간 출입은 안 해봤으니 약간의 호기심이 있었어요 할머니들이 줄지어 나란히 앉아서 어디서 왔는지, 어디가 아프고, 어느 병원을 다니고 계시는지, 또는 보고 싶은 자식들 이야기를 자랑을 곁들여 늘어놓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불현듯 친정 엄마 생각이 났어요. 아마 우리 엄마도 저렇게 하셨겠죠. 크지는 않았지만 떡쌀과 고춧가루를 빻는 기계와 참기름을 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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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엔이야기...멍주 2020. 10. 5. 12:50
옷자락에 묻어있는 가을을 마치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듯 어루만지며 세컨 하우스에서 보내는 시간입니다 며칠 새 확연히 달라진 계절의 변화가 낯설고 서글퍼지네요. 가을마당 한편엔 수줍은 소녀의 마음 같은 순백의 구절초와, 작고 여린 노란빛이 뚝뚝 묻어나는 산국, 빨~갛게 물든 입술을 벌여 농염한 모습으로 눈길을 끄는 석류, 늙은 여자의 엉덩이 같이 볼품없이 주름 잡힌 동그란 호박과 살아가려는 몸부림인지 어디서나 칭칭 감고 오르는 유홍초의 애틋함 등등이 지금 제가 보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길 옆 가장자리에 자리한 금목서에도 작고 노란 꽃들이 활짝 피어나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진~한 향을 내뿜고 있습니다. 보통의 꽃들이 그렇듯 생명이 짧은 금목서 향의 스러짐이 아쉬워 이른 아침에 더욱 짙어지는 향을 한 움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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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를...이야기...멍주 2020. 10. 2. 10:35
살다 보면 가끔 부딪히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 일들도 그때 당시는 왜 그렇게 마음 졸이고, 아파하고, 속상한지... 시간이 지나고 보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하품하듯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심한 어지럼증으로 눈꺼풀은 내려앉고 미간에 주름이 그어진 채 보내다가 문득 거울 속에 비치는 나를 마주하게 되면 가슴속에선 무언가가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으로 다가오고 촘촘한 그물에 걸린 슬픔들이 한데 묶여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한 채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든다.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려고 애써보지만 얕은 속은 눈에 보일 정도로 그 깊이를 드러내게 되고 그로 인해 또다시 뾰족하게 날 선 시간으로 채워진다. 마음에 작은 촛불 하나 켜 놓고 후~ 불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아련한 연기 냄새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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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변화를 시도하는 명절이야기...멍주 2020. 9. 30. 23:46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던 것처럼 '즐거운 추석이 돌아왔습니다~'라고 하면 좋을 텐데 지금의 현실은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몸도 마음도 예전 그때의 아이가 아니니 결코 즐거운 추석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죠~ 저희 시댁에서는 여전히 옛 풍습을 따르다 보니 여자들은 힘든 명절과 제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이번 명절부터는 조금씩 변화를 주자는 의견이 나왔고, 우여곡절 끝에 이렇듯 여유를 부리는 명절을 보내게 되었어요. '이렇게 보내는 명절도 있구나...' 하는~ 큰댁에서 잠시 보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니 꼬맹이들도 어느새 훌쩍 자라 콩나물도 다듬고 모양도 제각각인 송편도 빚는 일도 척척 해내는 걸 보니 웃음이 납니다 다 모이진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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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이야기...멍주 2020. 8. 20. 22:51
가끔은 보이지 않는 당신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당신을 내 안에 꽁꽁 묶어둘 마음은 아니지만 마주하고 있는 당신의 심장 울림처럼 내 안에도 삶에 대한 끈을 좀 더 단단하게 엮어가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어요.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손바닥만 한 당신의 심장까지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은 내 안에 그려 넣었던 당신의 자리에 아직도 덩그러니 남아있는 쓸쓸함 때문이겠지요 ......... 오늘도 뜨거운 햇살에 휘청거렸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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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예쁜 봄이 왔는데...이야기...멍주 2020. 3. 30. 10:31
봄, '봄'이라는 이 단어를 생각만 해도 옅은 미소가 지어질 것 같은데 요즘 분위기는 사람도, 세상도 모두 다 코로나 블루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봄을 알리는 예쁜 꽃들은 다른 해 보다 더 화려해 보이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들은 그 곁에 다가가기를 꺼려한 채 안타까운 마음으로 봄 주위를 맴돌고 있으니... 시골집으로 오가면서 고속도로를 이용하기보다는 조금 험한 길이지만 일부러 산길을 따라가며 봄을 즐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매화와 기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러 오시는 사람들도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고, 작은 기차 역 주변 산책로를 따라 걷는 벚나무길에도 사람들의 행렬이 뜸하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은 드라이브를 나온 차량들이 많아졌고, 거의 다 차 안에 앉아서 눈으로만 즐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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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가을에게이야기...멍주 2019. 11. 27. 11:10
간밤엔 소리 없이 비가 내렸더군요. 그래서인지 겨울은 더 깊숙이 내려앉은 듯합니다. 계절을 잊은 듯 마당 한편에 피어있던 송엽국은 진붉은 꽃송이를 매단 채 한층 더 도도한 자태로 으스대는데, 키가 커서 슬퍼 보이던 구절초는 무릎이 꺾이며 점점 쓰러지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생명이 저마다 살아가는 길이 다르듯이 어쩌면 이 또한 당연한 이치일 텐데 왜 이렇게 슬퍼지는지요~ 11월도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임을 아는지 가을도 등을 돌린 채 점점 멀어져 가고 있네요. 조금 더 마주하려 눈을 맞춰보지만 그럴수록 더 흐릿해져 갈 뿐입니다. 아쉽지만 이젠 잘 가라는 인사를 해야겠어요. 다음엔 더 멋진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는 인사도 곁들이며. 가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