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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는다는 것 - 정용화옮기다... 좋은 글 2019. 11. 10. 20:11
누가 처음 종이에 날개의 무늬를 새기려
했을까
스물여섯 번의 바람을 접어 넣고서야
종이는 한 마리 새가 된다
밤새 길게 써놓은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넣을 수 있고
먼 길을 날아온 새들도 날개를 접어야
나뭇가지에 앉아서 쉴 수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향기가 피어나는 구절에 밑줄을 긋고
나비는 잠시 도시의 귀퉁이에서 날개를 접는다
접는다는 것은 밖으로 펼쳐졌던 마음을
안으로 들여앉히는 일
살짝 접어두었던 마음은
다시 보고 싶은 페이지를 만든다
슬픔으로 접어놓았던 마음에 그늘이 내리면
켜켜이 쌓인 어둠에서 모퉁이가 만들어지고
구석들이 생겨난다
고단한 새들의 날갯빛으로 저녁이 오고
하루를 접은 골목에 어둠이 고인다
구름도 사람이 그리운 날이면
슬그머니 다리를 접고 땅으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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