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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추석을 보내고이야기...멍주 2017. 10. 6. 12:40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조용하게 내리는 날.
긴 연휴가 끝나기엔 아직 시간이 며칠 남아있지만 추석이 끝나고
짧았던 친정 나들이까지 마치고 돌아와서는
헤집어 놓았던 마음과 피곤함까지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며
이제야 조금씩 여유가 찾아온다.
추석 전날,
꼬마들이 많은 시댁에서 바구니 가득 차고 넘칠 만큼의 튀김과 전을 굽고,
떡집에 주문하면 맛이 없다는 큰 형님의 말씀에 다 같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으며
각자 남편들의 흉을 보기도 하고 은근슬쩍 칭찬을 곁들이기도 하며 웃음꽃을 피운다.
많은 식구들이 모여서 차례도 지내고 멀리까지 가야 하는 질부들부터 서둘러 보내 놓고
느긋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꽤 늦은 시간이 되어 가봐야겠다고 서두르니
연휴도 긴데 하루 더 자고 친정으로 가라시는 형님들의 말씀에
예전 같았으면 어떤 대답도 못한채 혼자 속앓이만 했을 테지만 이제는 웃으며
“오늘 못가면 친정 식구들 얼굴 언제 보겠어요”라고 웃으며 말할 여유도 생긴 것 같다.
하긴 나도 곧 며느리를 볼 만큼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으니...
계속되는 만류에도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며 어두워지는 거리를 뒤로한채
밀리는 차량들 틈에 섞여 먼 길을 떠났다.
맞은편 차선의 전조등 불빛이 가득한 도로에서 보내는
지체되는 시간은 왜그렇게 지루하기만 한지~
어둠이 깔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남은 가족들을 기다리는
환~한 불빛만 마당 가득 내려앉아 있었고,
오래전 수학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며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던
그때처럼 대문을 들어서는 발길이 즐겁다.
밤이 지칠때까지 묵은 이야기들로 깔깔거리며 웃던 시간이 지나고
이른 아침, 채 깨지 않은 아침 이슬을 맞으며 조금은 쌀쌀한 기온에 팔을 쓰다듬으며
엄마와 함께 밭으로 나가보던 그 시간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아침 정리를 끝내고 느긋한 마음으로 아버지 산소를 가는 길.
산소 옆, 지금은 타지 사람에게로 넘어간 산에는
‘잊어가는 길’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분도 나처럼 이 길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이 남아 있었던 걸까~
산소 옆에 모여 앉아 준비해 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잊지 않으려는 듯 아버지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내려가는 길에서 바라본 마을이 정겹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감 밭을 둘러보기로 했다.
멍 주 나무는 여전히 진초록의 싱싱함으로 반겨주었고,
엄마와 동생이 봄부터 여름 내내 흘린 땀방울들이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감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딸들이라서 잠시 앉아서 깎아먹은 감이
1인당 한 나무씩이라는 조카의 말에 또 까르르...
힘들어하실 엄마를 대신해서 집안 정리와 청소를 끝내 놓고
썰물처럼 한꺼번에 빠져나가서 서운한 마음을 전하는 엄마에게
감 수확할 때 다시 찾아올 거라는 말로 위로를 한 뒤
많은 음식들로 채워진 배와 차 트렁크를 부풀린 채 서운한 작별을 고하고 떠나왔다.
텅 빈자리를 느끼며 적적해하실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오늘따라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떠시냐고 안부전화라도 드려야겠다.
다시 찾은 일상에서 돌아보면
‘추석’이라는 큰 행사도 다른 날과 하등의 차이도 없이 지나가고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많이 웃고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가족 간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로 인해 하나로 엮여있는
‘가족’이라는 끈끈한 정으로 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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