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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질 때 - 홍계숙옮기다... 좋은 글 2016. 7. 1. 10:57
바람도
나직나직 스쳐가는 유월의 오후
빗속을 걸어서
햇살을 건너서
비바람 견디어 온 푸른 시절이
동그란 노을을 떨굽니다
줄기마다
향기를 피워올리려
가시를 세웠던 지난날들 모두어 온
꽃잎, 꽃잎,
한 송이 꽃의 생애가 저물 때
꿈결같던 속삭임 한 점 떨구고
그 곁에 날갯짓의 숨결하나
그리움 한 잎 내려앉고
허전함이 살포시 날리고
고여 흐르던 미움마저 한 잎 떨구면
나 이렇듯 그대 이따금
꽃자리 돌아볼까
봉오리 부풀던
오월을 건너 초록이 짙어
먹먹한 한 평 그늘로 내려앉는
초여름의 호흡
동그마니 느낌표 하나씩 내려앉을 때
가지 언저리마다 뾰족이
붉어지는 눈시울
꽃 진 자리에
발갛게 노을이 번집니다
친정 집 담장 너머로 피어있는 붉은 장미는
바다 위를 넘실대는 파도같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오십줄에 접어들고서야 엄마와 속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날
엄마도 여자라는걸, 엄마도 꿈꾸는게 있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그건 담장 너머로 줄장미가 예쁘게 피어있는 집을 꿈꾸어오던
이제는 늙으신 엄마의 소망이었습니다.
맏딸인 언니가 엄마를 위해 친정 집 담장밑으로
붉은 줄장미를 몇 포기 사와서 심었습니다.
한 해, 두 해가 가고 이젠 장미가 멋스럽게 어우러져 해마다 6월이면
친정집 담장너머로 넘실거리는 장미를 보며 엄마는 웃고 계신답니다.
지금은 얼굴에 주름투성이인 엄마도 우두커니 마루에 앉아
노을처럼 번지는 붉은 장미를 바라보며
지금은 떠나고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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