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울 엄마
무언가에 화가 난 듯 바람이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날.
이런 날은 햇살이라도 따뜻하게 비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갑작스러운 엄마의 입원과 최악의 선고를 받은 뒤
부모와 자식으로서 함께 한 시간은 겨우 3개월에 불과했다.
아파하고 울고만 있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엄마 앞에서는 환하게 웃어야 했지만
가슴으로는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삭여야만 했던 그 짧은 시간들.
쉴 새 없이 들어가는 항생제와 진통제를 비롯한 몇 가지 액체들이 주렁주렁 걸린 링거대와
하루 세 번씩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는 한 움큼의 약통들과 함께
엄마의 머리맡엔 예쁜 화분도 하나 들여놓았었다.
창에서 스치는 바람에 향긋함이 느껴질 땐 힘겹게 눈을 뜨고는 “예쁘다∼” 하시던 울 엄마.

차츰 옅어지는 숨을 몰아쉬더니
마지막 당부 말씀 한마디를 남기지 못하고
기어이 눈을 감고 말았다.
많은 자식들을 남겨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는지...

아버지 옆자리에 나란히 잠드시던 날,
산소 옆 매화는 서러울 만큼 예쁘게 피어있었고
삼오 날에 다시 찾아간 무덤가에는
때 이른듯 느껴지던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나풀나풀 날고 있었다.
마치 엄마가 환생이라도 한 듯
눈언저리가 젖은 채 모두들 그 나비를 좇고 있었다.


저 멀리 맞은편 저수지 너머 높은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평안히 잠드신 부모님.
몇 해 전에 먼저 가신 아버지도 다시 만난 엄마로 인해 한결 편안해지셨을까?
좀 더 여유를 두고 천천히 데려가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며칠 전, 비가 오는 날.
예전에도 이런 날엔 엄마에게 전화를 했던 것 같아 무심코 전화를 걸었더니
벽장에 놓인 가방 속에서 엄마의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그날 가방 속에 넣어둔걸 지금껏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허무한 마음에 얼마나 눈물이 나든지.
이제는 반가이 전화를 받아줄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그 사실이
슬프고 아픈 현실이 되어버렸다.
좀 더 자주 전화를 해서 통화 기록에 내 이름이 줄줄이 올라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를 즐겁게 해 드리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는데
왜 이제야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는지...
아직도 엄마의 모습은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볼 수도, 만질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기에 가슴이 아프다.
모두들 이별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영원히 이별은 없을지도 모른다.
가슴 깊이 함께 숨 쉬며 영원을 다짐하고 있으니까.
“엄마! 사랑합니다.
당신의 딸로 살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